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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소멸위기언어’ 제주語의 반란… 또 하나의 ‘브랜드’로 키우는 제주의 힘
2011-02-10 11:34:25
제주어보전회 <> 조회수 3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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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땪는 거는, 갂만 시라. 저 가메, 가메타곡게. 지붕잇고, 창도 이신 거. 창도헹 열고. 게난 둘이 들르주. 앞이 들르곡, 뒤에 들르고. 남자는 사모관대 잇잖아게. 여자도 창옷땪곡 족두리헹

(결혼식 하는 것은, 가만있어라. 저 가마, 가마 타고. 지붕 있고, 창도 있고. 창도 열고. 그러니까 둘이 들지. 앞에서 들고 뒤에서 들고. 남자는 사모관대 있잖아. 여자도 창옷하고 족두리 해서).”

#“도새기사 어떵 잡아게. 괝아메영 야개기 걸려당 통시에 거 야개기 걸령 끄성 왕 이젠 낭잇는 디 베로 헹 낭에서 괝아멩 죽이주게. 죽으미는 검질로 막 불 살랑 거기시리주게. 경헹 잡앙 냂앙 헷주게

(돼지야 어떻게 잡느냐. 우리에 있는 것 목 끌어와서 이젠 밧줄로 나무에 매달아 죽이지. 죽으면 검불로 그을리지. 그렇게 잡아서 삶아서 했지.”

난이도는 토플 ‘듣기’에 버금갔다. 지난 25일 오후 제주시 도두동 마을회관. 제주에서 나고 자란 70∼90대 토박이 할머니 10명이 주거니 받거니 나눈 수다를 40분간 ‘리스닝’했다. 반세기 전 가마 타고 시집간 얘기, 마흔아홉 남편을 앞세워 보낸 사연, 해방 전 뭍으로 나가다 미군 폭격기에 죽다 살아난 기억. 귀에 걸리는 건 단어 몇 개. 줄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통역이 필요했다.

고춘매(78) 할머니가 난감한 표정의 방문객에게 물었다. “우리(제주 사람)는 서울 사람 말 다 알아듣는데 외지 사람은 제주 말, 못 알아듣지? 하긴 뭍에 나간 친척들도 몇 년 지나면 절반도 못 알아듣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제주어 억양의 흔적조차 없는, 또박또박한 표준말이었다.

제주 사람이 서울말을 잘하는 이유

“서울 가서 제일 먼저 서울말 익히는 사람이 제주 사람들이에요. 부산이든, 광주든, 어디든 타지 사투리 배우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할 걸요.”(강명주 제주어보전회 사무차장)

제주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완벽한 표준어 구사능력이다. 이유에 대한 해석은 분분했다. 제주어 억양이 서울말과 가장 비슷하다거나, 현대 한국어에서 사라진 ‘아래 아’ 발음이 남아있어서 귀가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제주 귀일중 국어교사 김성용씨는 “제주말 쓰는 걸 부끄러워했던 과거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서울에 있는 친척과 얘기할 때도 제주말 튀어나올까봐 전화하는 게 꺼려질 정도였어요. 제주어를 쓰면, 제주 사람이라면 느껴지는 차별 같은 게 있었거든요. 전라도 사투리도 차별받았다지만 제주어는 훨씬 심했어요. 서울말 빨리 익히고 억양이 없는 건 아마 제주말을 빨리, 완벽하게 감추기 위해서일 겁니다.”

과거 학교에서 제주어는 훈육과 제재의 대상이었다. 제주어를 쓰다가 장학관에게 지적받는 교사도, 제주말 쓰다 교사에게 혼나는 학생도 제주에선 흔했다. 학습 효과는 확실했다. 제주 방언을 이해하는 제주의 청년 인구는 사투리를 쓰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빠르게 줄어들었다. 2008년 ‘제주 지역어 생태지수 조사 보고서’(제주대 국어문화원)를 보면, 60대가 쓰는 단어 대부분을 20대는 뜻조차 모른다고 답했다. 현재는 “10∼20대는 물론이고 40대조차 제주어로 소통이 안 되는 상황”(강명주 사무차장)이다.

그건 제주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허남춘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장은 제주 역사의 소외를 지적했다. “사서가 기록한 탐라국은 국사 교과서에서 아예 사라졌습니다. 제주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게 13세기예요. 그 후에는 유배의 땅, 해녀 굿 같은 이색문화, 제주 4·3사건으로만 기록됐습니다. 밝고 선진화된 근대문명과 대비되는 뒤떨어지고 창피한 문화. 그게 제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중앙의 인식입니다.”

제주어의 반란

지난해 12월 유네스코(UNESCO)는 인도 코로(Koro)어와 함께 제주어를 ‘소멸위기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등재했다. 소멸위기언어가 됐다는 건 ‘이 상태가 지속되면 조만간 사라질 언어’라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말기암 진단 같은 건데, 비보를 전해 듣고 제주는 환호했다. 제주가 주목한 건 ‘사라진다’가 아니었다. ‘사라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와 그 안에 담긴 제주어에 대한 국제적 인정이었다.

지난 몇 년, 제주도에서는 제주어 소멸의 속도만큼 빠르게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제주어 보존 및 육성 조례(2007년)가 만들어졌고, 제주어보전회(2008년)가 꾸려졌으며, 초·중·고교생용 제주어 교육자료(2007∼2009년)가 발간됐다. 제주어 주간이 지정되고, 제주어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지역 언론에는 제주어 방송과 제주어 산문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시내 곳곳에 제주어 간판도 걸렸다. 제주어 간판 컨설팅이 이뤄지고, 제주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의 안내방송이 제주어로 나왔다. 일반인 관심도 높아졌다. 제주어보전회가 지난해 처음 개설한 ‘제주어선생육성과정’에는 정원을 초과하는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정년퇴직한 교사와 사업가, 주부, 연극인, 문화해설사까지 제주어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제주의 만학도들이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학교에서 일어났다. ‘제주어로 편지쓰기’ ‘제주어 글짓기’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어를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부터 제주시 귀일중학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제주어를 매년 10∼20시간씩 가르치고 있다. 정규 교과과정의 일환으로 제주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귀일중이 전국 최초였다. 제주시 세화고는 특별활동 프로그램으로 2009년 제주어반을 개설했다.

이런 노력이 언어소멸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 있을까. 희망적 징후는 있다고 했다. 도두동 할머니들의 경험담이다. “학교에서 제주말 숙제 같은 걸 내주는 모양이지. 옛날에는 할머니랑 말 안 통한다고 하던 손자들이 ‘할머니, 이게 무슨 뜻이야?’ 그러고 묻데. 예전에는 제주말 쓴다고 배척하고 그랬는데 요즘 학교는 아닌가봐.”

강명주 사무차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제가 제주말 쓰면 촌스럽다던 초등학생 딸이 학교에서 제주어 말하기 대회가 열린 뒤 그런 말을 안 해요. 제일 중요한 게 학교예요. 학교가 바뀌면 아이들도 바뀔 수 있어요.”

제주도의 힘

전라어라는 말은 없다. 경상도 사투리도, 강원도 사투리도 경상어, 강원어로 불리지는 않는다. 유독 제주도 사투리만 제주어다. 조례에도, 사전에도, 교육 교재에도 모두 제주 방언 대신 제주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강영봉 제주대 국어문화원장의 설명이다. “방언의 방(方)은 지방입니다. 제주 방언은 표준어와 대립되는 구도에서 변방 제주의 언어라는 뜻이지요. 제주어를 쓴 건 변두리의 열등한 언어가 아니라 ‘제주도에서는 으뜸이 되는 언어’라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최근 제주 브랜드의 명성은 높아지고 있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을 시작으로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년), 세계지질공원 인증(2010년)까지 유네스코 자연환경 분야 3관왕을 휩쓸었다. 최근에는 스위스 뉴세븐원더스(New7wonders) 재단이 주관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최종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제주어의 소멸위기언어 지정이 보태졌다. 드디어 세계가 자연을 넘어 제주 사람의 존재에 주목한 것이다. 제주 방언 대신 제주어를 택한 제주도의 자신감. 지난 몇 년 빛나는 성과를 거둔 제주도의 힘, 제주 사람의 힘이기도 하다.

제주=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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